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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촉사 미륵전과 라이날디의 제수 에 마리아 알 코르소 교회 내 제단
부석사 무량수전과 베르니니의 코르나로 채플 ..
- 임석재, 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 대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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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을 만드는 사람이 있고 보는 사람이 있는 예술로 정의한다면 일정한 틀 속에서 만들고 또 일정한 틀 속에서 보게 된다. 여기에서의 틀이란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서양 건축처럼 건물을 만든 사람이 개인 예술가로서의 건축가인 경우 창조 작업에 대한 자신만의 이론과 법칙이 있다. 틀이란 일차적으로 건축가 입장에서 자기 작품에 대한 기본 배경으로 가정하는 이론과 법칙을 의미할 수 있다. 이때 건축가는 자신의 이론과 법칙을 보여 주는 장場을 건물의 한 부분에 설정하게 된다. 관찰자는 건축가의 이러한 예술적 의도를 읽으면서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과정은 건축을 포함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가장 일반적인 경우이다.

    건축가가 어떠한 예술적 의도를 갖고 작품을 만들면 감상자는 그것을 기본 배경으로 자신의 주관적 해석을 곁들여 그 작품을 감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 건축가 쪽에서 특별히 어떠한 부분을 강조하고 싶을 때 건물에 마치 무대 세트 같은 장을 설정하고 그 부분에 자신의 의도한 바를 집중적으로 표현하게 되는 수가 종종 있다. 이것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프레임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건축가는 자신의 뜻을 표현하는 프레임을 건물 위에 만들고 감상자는 이것을 감상하는 또 다른 프레임을 마음속에 그리는 것이다. 이처럼 프레임은 건물을 만든 사람과 감상하는 사람 사이에 공동의 창구 역할을 하는 유용한 수단이다. 이것은 바꿔 이야기하면 건축에 회화적 기법을 차용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왜냐하면 전통적 개념의 회화는 캔버스라는 프레임을 가지며 화가는 그 범위 안에서 자신의 예술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건물에 무대 세트 같은 장을 설치하여 하나의 장면을 제시하려는 프레임의 개념은 이같은 회화의 기능을 건축에 도입한 결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렇게 제시되는 장면은 감상자에게는 하나의 건축적 경치일 수 있다. 일정한 프레임 안에 경치를 담는 이런 경향은 말 그대로 차경借景과 장경場景으로 정의될 수 있다. 동서양 건축 모두 프레임을 사용한 예들이 발견되는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적 집중이 필요한 때 프레임을 가장 많이 사용하게 된다.

    관촉사의 미륵전은 한국 전통 건축에서 프레임의 기능을 감상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예이다. 관촉사의 미륵전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지 않다. 그 대신에 미륵전 후벽에 난 창을 통해서 건물 밖 뒤쪽에 있는 은진미륵의 모습이 보이도록 처리되었다. 이것은 창을 통해 밖에 있는 은진미륵의 모습을 실내에 끌어들여 불상을 기능을 대신하고 있는 점에서 차경의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관촉사는 긴 돌계단을 오른 다음 돌로 지은 특이한 형태의 해탈문을 통과하면 바로 미륵전을 맞이하게 된다. 관촉사에는 대웅전이 없고 그 대신 미륵전이 있는데 건물 크기도 작고 안에 불상도 모셔져 있지 않다. 예불이라도 드리려고 문을 열고 미르전 안을 들여다보면 창문 너머로 은진미륵의 큰 얼굴이 갑자기 나타난다. 처음에는 깜짝 놀라기 십상이지만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 존안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미륵의 높은 뜻이 마음속으로 전해져 온다.

    창문 주위를 자세히 살펴보면 불상만 없을 뿐 불상을 모시기 위한 주변 장치는 다 되어 있다. 이것은 건물 밖의 은진미륵이 창을 통해 실내로 들어오는 이런 장면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만든 것임을 의미한다.

    관촉사의 차경 기법은 불상을 실내에 모실 경우 갖지 못하는 두 가지 기능을 갖는다. 한 가지는 불상의 크기가 건물의 크기에 의해 제한받지 않는 다는 점이다. 관촉사 은진미륵의 높이는 18미터이다. 이만한 불상을 실내에 담으려면 건물 높이는 기초와 지붕까지 감안하면 30미터는 되어야 한다. 그러나 관촉사 미륵전은 다른 사찰의 작은 선원 정도의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차경이라는 기법에 의하여 자기 몸보다 몇 배는 더 높은 거대 불상을 실내에 담아내고 있다. 건물은 작지만 실내에 있는 불상은 세계에서 가장 큰 불상을 모신 셈이다. 차경은 이처럼 작은 그릇 안에 그 그릇의 크기보다 더 큰 내용물을 담을 수 있는 기막힌 시각 조작 기능을 갖는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차경의 이러한 물리적 기능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있는 부처님의 큰 가르침이다. 우리는 관촉사의 미륵전을 통해 건물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 크기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결국 관촉사 미륵전은 부처님의 존재를 차경이라는 기법을 통해 제시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사물을 볼 때 겉치레에 현혹되지 말고 내용을 봐야 한다는 교훈을 함께 가르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큰 가르침인가. 그리고 이러한 가르침이야말로 바로 미륵 신앙의 기본 이념이기도 하다.

    최근 종교를 비롯한(기독교이건 불교이건 구별 없이) 우리의 일상사를 보면 마음은 병들고 속은 비었으면서도 겉모습만 크고 화려하게 해서 눈을 속이려는 허풍병에 걸려서 바둥거리며 매일을 살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관촉사에 가서 미륵전을 보며 평범하고 작은 불전도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넓은 뜻을 담고 큰 깨우침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느낀다면 한국 전통 건축이 갖는 또 다른 멋을 알게 되는 것이다. 창을 통해서 인자하게 웃고 있는 저 미륵을 보지 못하거나 보고도 마음으로 모시질 못하고 이 건물은 왜 이렇게 작고 불상도 모시지 않았느냐고 시시한 절이라며 투정이나 부린다면 미륵께서 가르치신 그 큰 감동을 못 느끼고 놓치는 것이니 이 얼마나 아쉬운가.

    차경 기법이 갖는 다른 한 가지 기능은 눈높이, 시선 각도, 거리 등에 따라 차경되는 불상의 모습이 수시로 바뀐다는 점이다. 물론 눈높이나 시선 각도를 바꾸면 사물의 모습이 변한다는 사실은 어느 경우에나 해당되는 당연한 상식이다. 그리고 불상을 실내에 모시고 있는 경우에도 당연히 그러하다.

    그런데 차경은 창을 통해서 밖의 장면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창틀이 회화의 캔버스 프레임과 같은 기능을 하게 된다. 이것은 차경되는 장면을 담는 윤곽이 정해져 있음을 의미한다. 이같은 창의 윤곽은 차경되는 장면을 자르고 다듬어내는, 곧 트리밍하는 기능을 갖는다. 같은 불상을 보더라도 이처럼 프레임을 한 바퀴 두르고 그 속에 불상을 끌어들여 보게 되면 집중도가 훨씬 높아진다. 참배자는 눈높이, 시선 각도, 거리 등을 바꾸어가며 자신이 보고 싶은 장면을 골라서 결정할 수 있게 된다. 때로는 미륵의 확대한 듯한 큰 얼굴을 프레임 안에 집어넣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듯 그 숨결을 느껴보기도 하다가 또 어떤 때는 이와 반대로 멀리서 상반신 전체가 들어간 큰 모습을 보면서 관조하듯 그 존재를 느낄 수도 있다. 관촉사의 은진미륵은 차경 기법에 의하여 그 자체가 대웅전이요 동시에 그 속의 불상 역할까지 한번에 다 해내고 있다.

    서양의 기독교 건축에서도 관촉사 미륵전과 비슷한 차경의 기법들이 많이 쓰였다. 이 가운데에서도 카를로 라이날디 Carlo Rainaldi는 장경주의Theatricalism라는 기법을 즐겨 사용하던 대표적인 건축가였다. 라이날디는 서양 건축사에 있어서 미켈란젤로, 베르니니 등과 함께 신이 내린 재주를 타고난 천재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라이날디는 베르니니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조각 솜씨를 이용하여 가톨릭의 종교적 열정을 극적인 장면으로 표현하는 단집 작품을 교회 건물 안에 많이 남겼다. 라이날디이 닫지은 장면을 담는 틀뿐 아니라 이 속에 들어가는, 곧 건축가가 보여 주려는 장면까지도 하나의 완결된 세트로 정하여 만드는 특징을 보인다. 이런 특징은 관촉사 미륵전에서 살펴보았던 한국 전통 건축에서의 차경 기법과 구별되는 서양 건축만의 특징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라이날디의 제수 에 마리아 알 코르소 교회 내 제단 Altar maggiore della di Gesu e Maria al Corso을 보자.

    이 제단에서는 기둥과 기둥 사이에 작은 무대 같은 닫집이 만들어져 있으며 그 속에는 이 제단의 봉헌 대상인 예수와 성모 마리아가 길 위에서 행한 행적을 설명해주는 조각 작품이 들어가 있다. 이때 닫집은 신전의 와관을 흉내낸 미니어처로 만들어져 있고 닫집 위 건물 천장 쪽에는 천당을 상징하는 성화와 구름이 그려져 있다. 라이날디의 제단에서는 장면을 담는 윤곽과 장면의 내용까지 모두 사전에 결정되어 건축가의 손에 의하여 한 가지 고정된 상태로 조각되어 제시되고 있다.

    이처럼 한국 전통 건축과 서양 건축에서는 차경이라는 기법이 공통적으로 쓰이고 있는 동시에 차이점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차이는 한마디로 차경과 장경이라는 두 단어 사이의 개념의 차이로 표현될 수 있다. 관촉사 미륵전에서는 외부의 경치를 실내로 차용한다고 해서 차경이라는 말을 쓴다고 하였다. 이에 반해 서양 건축에서는 외부의 경치가 아닌 사람의 머리 속에서 상상에 의하여 창조된 경치를 사람의 손에 의하여 하나의 고정된 장면으로 완성시켜 제시한다. 이것은 감상을 위한 무대를 하나의 완성된 세트로 제공하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장경이라는 개념으로 정의될 수 있다.

    사람들은 하나의 건물을 볼 때 한눈에 전체를 다 보기도 하고 일부분만 보기도 하며 또는 건물 너머 주변까지 포함한 큰 시각으로 보기도 한다. 서양 건축의 장경은 주로 건물의 일부분에 높은 집중도를 보이는 특징을 갖는 반면 한국 전통 건축의 차경은 주변 요소를 포함하는 큰 틀을 제시하는 특징을 갖는다. 이에 따라 전달되는 종교적 가르침도 서양 건축의 장경은 집중적이고 직설적이며 명확한 반면 한국 전통 건축의 차경은 포괄적이고 은유적이며 간접적인 특징을 보여 준다.

    서양 건축에 장경 기법을 탄생시킨 데에는 투시도라는 도구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투리도는 건물의 모습이 삼차원 공간 속에서 어떻게 보일지를 작도에 의해 미리 예측하는 기법이다. 서양 건축가들은 투시도를 활용함으로써 하나의 프레임 단위 내에 있는 일정 크기의 공간이 어떻게 보여지는가를 처음부터 가정하고 계획을 세워서 그대로 시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투시도는 건축을 인간의 손에 의한 인공적 질서를 세우는 것으로 정의하는 서양 건축의 기본적 조형관을 잘 보여 주는 예 가운데 하나이다. 투시도를 통한 이같은 예측이 있기 때문에 건축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대하 전체적 질서를 미리 세우고 이것을 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닫집을 하나의 완결된 인공세트로 가정하고 결정하여 만들어내는 장경 기법은 이러한 투시도의 기능이 가장 잘 반영딘 개념 가운데 하나이다.

    서양 건축의 장경은 프레임과 중간 구조물로 이루어지는 배경과 이 속에 들어가는, 곧 건축가가 보여 주려는 장면으로 구성되는 하나의 큰 세트이다. 이러한 세트가 어떠한 모습으로 보여질지를 미리 예측할 수 있게 해주는 투시도의 도움 덕분에라이날디는 완성도 높은 닫집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투시도는 이처럼 서양 건축에서 높은 시선 집중도를 갖는 차경의 특징을 결정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서양 건축에서는 건축가가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하여 완성도 높은 상태로 만들어 제시함으로써 감상자의 시선은 건축가가 의도한 곳에 집중하게 된다. 이것은 배경이 되는 경치와 이것을 보는 틀만 짜 놓으면 나머지는 관찰자에게 맡기는 한국 전통 건축의 차경의 개념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서양 건축만의 특징인 것이다.

    차경과 장경의 이러한 차이점은 빛을 사용하는 데에서도 동일하게 관찰된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한국 전통 건축에서 빛을 이용한 차경 개념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앞의 '계단과 축'편에서 설명하였듯이 부석사 무량수전은 그 앞 아래쪽에 있는 안양루의 밑을 누하진입 방식에 의해 접근하도록 되어 있다. 범종각을 통과하여 위를 올려다보면 45° 사선 방향으로 안양루와 무량수전이 비껴 앉아있기 때문에 두 건물이 한 눈에 같이 들어어게 된다. 이때 안양루는 짙은 색의 목조 건물인 데 반해 그 뒤 약간 높은 곳에 있는 무량수전은 밝은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기 때문에 두 건물은 극명한 명암차이를 드러내면서 대비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는 무량수전의 밝은 벽면이 부분적으로 보이면서 환한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안양루 앞에 서면 누각 밑 진입 공간을 통해서 무량수전의 벽면이 눈앞 가까이에 보여진다. 안양루의 검은색 나무 기둥 사이로 보이는 무량수전의 벽면이 밝은 노란색으로 빛나며 손에 잡힐 듯 성큼 눈앞에 다가와 있다. 안양루 밑을 통과하고 계단을 올라 무량수전의 전체 모습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면서 황홀경은 시작된다. 무량수전은 동남향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아침 해뜰 때 햇빛을 받게 되면 땅에서 반사되는 간접광이 지붕 처마 밑으로 차고 올라오면서 정면 벽체에 비쳐진다. 이때 정면 벽체가 밝은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기 때문에 무량수전은 마치 부처님의 얼굴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감동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무량수전은 온화한 웃음을 띈 것 같은 모습으로 어느새 눈앞에 나타나 있다. 이것은 빛을 이용한 절묘한 차경의 기법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에서는 방위와 색을 이용하여 빛이라는 자연 경치를 차용함으로써 부처님의 존재를 은유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서양 건축에서는 이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빛을 사용하는 특징을 보여 준다. 예를 들어 고딕 성당에서는 높은 실내 공간 속에 창을 많이 갖는 측벽을 통해서 강한 직사광선이 들어오게 하여 빛을 실내 가득히 채움으로써 신의 존재를 상징하고 있다. 바로크 시대에 오게 되면 이러한 직사광선이 중앙 제단이나 닫집에 초점을 맞추어 한 곳으로 집중되도록 처리함으로써 빛을 직접적으로 다루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바로크 교회에서는 둥근 지붕으로 구성되는 천장에 창을 내는 방법을 통해 꼭대기에서 빛을 모아 초점을 향해 쏘듯이 빛을 다루었다. 이것은 그만큼 빛을 사람의 손으로 다루고 싶어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빛이 모이는 초점의 지점에는 닫집이 놓이거나 아니면 닫집에 해당되는 종교적 장면이 장경 개졈으로 조각되어 있다.

    베르니니의 코르나로 채플 Cornaro Chapel은 직사광선을 초점에 모으는 서양 건축의 장경식 빛 개념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코르나로 채플 역시 라이날디의 제단과 매우 유사한 닫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니어처 형식의 건물 모양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장면이라든가 그 속에 종교적 스토리를 조각물로 새겨놓은 처리 등은 라이날디의 제단에 나타난 서양식 장경의 개념에 대한 전형적 모습에 해당된다.

    그런데 닫집 속에 들어가는 조각상을 자세히 보면 큐피드 조각상의 위쪽에서 이 조각상을 초점으로 삼아 떨어지는 강한 빛을 상징하는 조각물이 첨가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쬐는 강렬한 아침 햇살을 조각물로 옮겨 놓은 듯한 이 장면은 서양 건축가들이 얼마나 빛을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자신의 손으로 다루고 싶어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빛이 있으라 하심에 빛이 있었다"라는 성경 구절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독교에서는 빛을 신의 가장 위대한 창조물로 여긴다. 그런데 서양 건축가들은 신의 존재를 상징하기 위해 사용하는, 신의 가장 위대한 창조물인 빛조차도 자신의 손으로 방향과 강도를 조절하고 성격까지 결정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이것은 있는 그대로의 빛에 건물을 맞추려는 부석사 무량수전과 구별되는 서양 건축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 전통 건축과 서양 건축은 모두 차경이라는 개념을 중요한 감사 기법으로 추구하였다. 이것은 동서양 차이를 뛰어 넘는 공통적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다. 특히 서양 건축에서는 장경이라는 개념을 실내에 한정하여 사용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에 반해 한국 전통 건축에서는 내,외부 공간을 뛰어넘어 외부의 경치를 내부로 끌어들이는 특징을 보인다. 이것은 앞의 '중첩과 관입'에서 보았던 불이 사상의 공간관이 반영된 결과로 이해될 수 있다. 도가 사상에도 나타나 있듯이 동양에서는 내,외부 공간이 결국은 하나라는 생각이 건축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한국 전통 건축의 차경 기법에 나타난 특징은 이것의 좋은 예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